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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석칼럼] 쌀의 해방 _ 전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이상언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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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15일 일본 국왕 히로히토는 옥음방송(玉音放送)이라는 명목으로 항복선언을 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아닌 황족어를 사용했고,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은 라디오를 소지하지 않았기에 해방됐다는 것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국민에게는 일본의 항복 자체보다는 계속 굴레로 작용했던 전쟁이 종식됐다는 의미가 훨씬 컸다. 해방이라는 용어는 구속이나 억압·부담 따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매우 커다란 변화 혹은 전환기를 의미한다.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사회에 진출하면서 곧 느낀 것은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친척들 만나는 것은 즐겁지만 부담하는 경제적 희생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명색이 9대 종손이지만 명망있는 유수의 종가와는 달리, 없는 집안의 종손은 경제적 부담만 크지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직도 집안 전체의 의사결정을 주도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쌀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건강한 연장자들이 여러분 생존해 계시기 때문이다. 명절 때 해외여행을 가려는 꿈은 꿔봤지만 감히 시도는 해보지 못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집안의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번 명절에도 쌀로 빚은 떡과 술이 차례상에 올라갈 것이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는 일제가 김제평야의 쌀을 군산항을 통해 실어나르는 과정이,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쌀 생산이 불가능할 것 같은 간도땅에서 논을 만들었지만 중국인 지주에게 수탈당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소설에 투영된 농민들은 쌀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명절 때나 쌀밥을 먹어볼 수 있는 소작인들이었다. 실상을 살펴보면 조선시대를 거쳐 1970년대 초 <통일벼>가 생산되기 전까지 거의 해마다 보릿고개를 겪어왔고, 국민의 다수가 배부르게 쌀을 먹어본 것은 5000년 역사 동안 약 40년에 불과한데도 많은 사람들은 쌀이 주식이란다.

 쌀이 왜 주식인가에 대해 우리는 사회적·문화적·인류학적 측면에서 근본적인 검토나 성찰을 한 적이 없고 오로지 숫자만 나열한다. 우리가 쌀을 가장 많이 소비하던 시절에는 1인당 쌀 소비량이 132kg이었지만,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쌀은 대략 60kg, 밀 40kg, 육류 50kg, 설탕 30kg 수준이다. 사전에 의하면 주식은 밥이나 쌀처럼 끼니에 주로 먹는 음식을 일컫는다고 정의돼 있으니 아직은 소비량이 가장 많은 쌀이 주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만간 주식의 순위가 바뀔 것이 거의 명확하다.

 수많은 농업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 근간은 쌀이고, 여타의 정책들은 모두 쌀을 보호하기 위한 부차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쌀 때문에 국민에게 사과한 적이 있고, 최근에도 우리는 쌀관세화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다. 생산량은 늘지만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낮아져 이제는 쌀이 매우 골치 아픈 품목 중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혹자는 소비량을 늘리자면서 가공식품 개발의 확대와 수출을 제시하고, 혹자는 사료용으로의 사용을 검토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생산량을 감소시키기 위한 방안과 보다 구체적으로는 쌀의 생산을 가격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다문다.

 소비자들은 이미 1인가구와 노령가구로 분화하면서 쌀이 아닌 자신에게 보다 필요한 다른 식품들을 찾고 있는데, 아직도 생산자와 정책담당자·학자·국회의원들의 발상은 모두 생산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생산 감소를 위해 생산조정제 및 변동직불금 개혁 등 여러 방법이 검토될 수 있지만, 시장에 맡겨 생산과 가격이 연동되는 고리를 제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쌀시스템에서 농업정책이 해방되는 것이 우리 쌀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서종석(전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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